나를 보내지 마 - 가즈오 이시구로 Book

30분후에 아이를 데리러 가야하는 상황 속에 이 글을 쓴다. 딸이 태어난지 2년이 지났다. 다시 말해, 내가 책을 읽고 책장을 접고 글을 쓰고, 다음책을 찾아 리뷰를 뒤적거리는 일을 2년만에 다시 한다는 것이다. 계절이 두번씩 지나고 다시 무더운 여름이 되었다. '여름이면 도무지 생각이라는 걸 할 수 없다'는 지난날의 나와 달리, 더운 요즘의 나는 다시 책을 읽고 싶다. 다행인지 아이는 4개월 전부터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했다. 날은 덥고, 하고싶은 일은 쌓여있고, 할일도 많지만 요즘은 종종 책을 집어든다. 그리고 급기야 오늘은 무언가 쓰고 싶어졌다. 

그렇다고 내가 2년동안 아무것도 읽지 않고, 요즘 신간이 뭔지 알지도 못하고 살았던 건 아니다. 전에도 말한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문학보다는 이야기에 탐닉했고, 전자책으로 혹은 짤막한 단편집으로 더듬더듬 문학의 언저리를 서성였던 것 같다. 기록하지 않는 독서는 쉽게 잊혀지는지, 나는 읽었던 책을 또 읽고, 좋아하는 작가의 이름이 도무지 떠오르지 않기도 하고, 과거에 읽었던 책들도 모조리 잊어버리고는 했다. 무언가 적고 싶어져서 블로그를 접속해 내가 쓴 글을 읽어보았지만, 어떤 책은 과연 내가 읽은게 맞나 싶을 정도로 생경했다. 그리고 어떤 글들은 내가 쓴게 맞나 싶을 정도로 낯설었다. 아이를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재우는 기계적인 일상속에서 진득히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글을 쓴다는게 사치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럴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 당장 나에게 빈 노트를 주면 써내려갈 수 있는 어떤 주제나 관심사도 없거니와, 있다해도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글쓰기는 안될거라고 생각했다. (과거에도 만족하며 글을 쓴건 아니지만. ) 

그런데 어느날, 그러니까 그게 바로 오늘. 그냥 쓰기로 했다. 어차피 방문자가 높은 블로그도 아닌데, 계정도 심지어 이글루스인데. 게다가 나는 그냥 아이 엄마인데. 뭐. 대담하고 어쩌면 무모한 아이엄마의 마음으로 읽었던 책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가즈오 이시구로가 노벨문학상을 받는다는 발표가 난게 작년 10월경. 문학에 문외한 사람이라도 일반적으로 접할 수 있는 빅뉴스 이다 보니, 육아하는 내 귀에도 이 소식은 당연히 들려왔다. 나는 가즈오 이시구로의 <남아있는 나날>을 진짜 재미있게 봤으니까, 기록도 하고 심지어 영화까지 찾아봤으니까. 아는 작가의 수상소식이라 기뻤다. 왜냐하면 그동안 '내가 이미 알고 있던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은 경우는 밥딜런을 제외하곤 없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밥딜런은 작가가 아니었으니.. 사실상 나는 어떤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듣고 나서야 그 작가에 대해 알게 되는게 일반적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가즈오 이시구로의 수상 소식을 들었을 때 왠지모르게 아는체 하고 싶어지는 심정이 있었다는 걸 부정할 수는 없다. 아무튼 그게 작년의 일인데, 나는 일단 <남아있는 나날>을 읽었으니 <나를 보내지 마>를 이제 읽어야겠다 싶었다. 잠투정 하는 아이를 겨우 재우고, 책을 주문했다고 생각했는데, 배송이 온 책은 <남아있는 나날>이었다.(내가 얼마나 정신없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아닌가) 그 이후로 김이 빠져서 다시 책을 주문하지 않고 있다가, 결국에 수개월이 지나서 <나를 보내지 마>를 읽었다.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로 일본에서 난리가 났다고 하는데, 많은 리뷰어와 독자들이 지적했듯이 작가의 정체성이나 문학적 기반은 아무래도 일본에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내가 생선 가시 바르듯 영미문학적 요소를 분석적으로 하나하나 꼽아내기는 힘들지만, <남아있는 나날>에서도 느꼈던 그 짙은 영미문학의 색채가 도입부터 느껴진다. 배경자체가 목가적인 기숙학교에서 시작하니까 말이다. 서사적인 요소가 너무 강해서 몰아치는 느낌이 아니라, 작은 일상의 뉘앙스를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 풀어내는 그 감각이 진짜.... 나한테는 정말 기다렸던, 그동안 너무 고팠던 문학적 감각이었다. 그리고 나는 종종 이런 느낌들을 '영미문학 색채'라고 '개인적으로' 표현하곤 한다. 다른 말로 하자면, 요즘에 많은 리뷰에서 종종 볼 수 있는 표현인 어떤 '결'을 흠뻑 느낄 수 있었다고 해야하나. 특히 개인적으로 감탄했던 부분은 작가가 '루스'의 성격과 기질을 표현하는 방식이었다. 집단 생활을 하는 사춘기 소녀의 특유의 감성을 중년의 작가가 어쩜 그리도 섬세하게 표현했는지. 

이 책을 다룬 '빨간책방'에서도 언급했지만, 책은 클론이라는 SF장르의 소재를 가지고 출발했지만, 여타 SF소설과는 다르게 어떤 스토리나, 거대 담론 그리고 과학적인 지식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사색의 결'을 특유의 문체에 담고 있기 때문에 다분히 '문학적'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부분이 나의 갈증을 풀어주었고. 그런 점에서 오랜만에 다시 시작하는 독서활동으로 이 책이 제격이였다. 지금 내게 필요한 건, 소설의 배경이 얼마나 말이 되느냐, 사건에 얼마나 인과관계가 있느냐, 소설이 시대적으로 시사하는 바가 무엇이냐, 하는 것이 아니니까. 지금 내게 필요한 건, 수수께끼 풀듯 알듯말듯한 문장도 아니고, 우울함이 바닥을 쳐서 버거운 책도 아니니까. 묵직함을 묵직하지 않게, 가벼움을 가볍지 않게 풀어내는 작가의 역량과, 중심이 아닌 그 언저리를 머물면서 핵심을 이야기 하는 문장들이 필요했으니까. 그래서 나는 줄거리 요약이랄 것도 없는, 그런 소설들을 좋아하는 것 같다.     

그런 관점으로 이 책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을 꼽자면, 나 역시 이동진 기자와 같다. 

그들이 헤어지는 장면에서 

"그러니까 캐시, 헤일셤에서 축구를 할 때 나는 남몰래 이런 걸 했었어. 골을 넣으면 이런 식으로 몸을 빙 돌리고는...." 토미는 환호하듯 양팔을 들어 올렸다. "친구들에게 달려가는 거야. 미친듯이 흥분하는 일 없이 그저 이렇게 양팔을 들어 올리고 달려가는 거지." 그는 잠시 두 팔을 들고 있다가는 이윽고 팔을 내리고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렇게 달려갈 때 말이야, 캐시. 나는 물속을 첨벙거리며 걷고 있다고 상상했어. 깊은 물이 아니라 발목 정도까지 오는 물 말이야. 매번 나는 그렇게 걷는다고 상상했어. 첨벙 첨벙, 첨벙."(390)

이렇게만 언급하고 넘어가는 부분이 소위 말해 고수의 작법이라고 해야하나. 이 이별이 보통이별이었던가. 마지막 기증을 앞둔, 말하자면 죽음을 앞둔 두 사람의 '진짜' 이별이었는데. 그 구구절절한 사연하나 입에 담지 않고, 그저 이렇게 말하는 이별이.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한가지 더. 책의 정말 마지막 페이지에 주인공 캐시가 텅 빈 들판에 서서 회상을 하는 부분. "눈물이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지만 나는 흐느끼지도, 자제력을 잃지도 않았다. 다만 잠시 그렇게 서 있다가 차로 돌아가 가야 할 곳을 향해 출발했을 뿐이다."라며 소설이 끝나는데, 이 부분에서 정말 마음이 저미듯이 아파왔다. 이 행동이 캐시가 살아온 삶을 이야기 해주는 것 같아서. 클론으로써의 삶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캐시가 너무 측은해서. 그리고 소설의 마지막 문장이 너무 쓸쓸해서.. 소설속 주인공이 떠난 그 들판에 독자인 내가 한참이나 남아있는 느낌이었다. 

여운이 남는 작품이다. 오랜만에 잡은 책으로 시작이 좋았다. 이 책을 시작으로 앞으로 내 독서활동도 계속 이어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손뜨개용품 직구의 결과 Kni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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